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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 24/04/20 01:00 | 추천 19 | 조회 33

나미비아의 국가영웅으로 칭송받는 독립운동가 +33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5736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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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엘 마하레로 (Samuel Maharero)

1856/생년월일 미상 - 1923/03/14


그는 현대까지도 침략자 독일에 맞서 저항한 나미비아의 독립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기사도 정신 또한 깃들어있다


1884년 자신의 터전이 독일의 식민지로 전락했을때만 해도 그는 평범한 헤레로족 전사이자 지역 추장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에 불과했으며

1890년 지역 사회의 유력인물이었던 아버지가 눈을 감은 이후 큰 재산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오카한자(현 나미비아 중부지역)를 물려받았을때는 독일제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이주해온 ‘굴러들어온 돌’인 이주민들이 고향을 빼앗고 짓밟았으며 동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식민지 노예들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오히려 독일 본국이 식민지에서 이주민들이 벌이는 참상에 놀랐다고 하는데

이주민들은 토착주민들을 노예화시켜 자신들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고문하고, 가옥을 불사르고 재산을 갈취했다고 한다


동포들을 단순히 쓰다 버리는 물건 취급하는 독일인들의 행태에 분노한 자무엘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는 자신과 함께 봉기에 참여한 동지에게 싸우다 죽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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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에 참여한 지도자들과 자무엘 (좌측 세번째)


1904년 1월 12일,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자무엘은 헤레로족 전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소수 민족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켰고

지금까지 동포들을 탄압하고 차별한 독일인 지주 123명을 살해한 후 주요시설을 점거한 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독일군대를 격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무엘은 악랄한 독일인들이지만 여성과 아이, 노인들에게는 절대로 손대지 않았고 그들이 소요지역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 어떠한 댓가도 없이 보내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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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군 총사령관 로타르 폰 트로타



하지만 아무리 준비가 되어있다 한들 막강한 제국주의 열강을 상대로 승리를 탈취해낼 순 없었다

빌헬름 2세는 진압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독 테오도르 로이트바인을 경질시키고 잔혹한 폰 트로타를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파견한다


비교적 유화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시간만 끌렸던 테오도르 총독과 달리 ‘반란군’ 을 쓸어버릴 생각에만 몰두한 그가 꿍꿍이였는지는 이 사태에 대한 성명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헤레로인들은 이 땅에 물러나야 한다. 만약 헤레로인들이 우리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는 총을 들어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들이 총을 들었건 안들었건, 가축을 가지고 있건 아니건 독일 국경내의 헤레로 족을 몰아내야만 한다.

나는 여성과 아이들을 더이상 받아주지 않을 것이며, 동족들에게 돌려보내던지 아니면 쓸어버려야한다.

이것이 내가 헤레로 인민들에게 고하는 바이다.

위대한 독일 황제의 대장군이 고함


- 로타르 폰 트로타의 성명문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실현시켰다

만 오천명에 달하는 군사와 수십 문의 대포와 기관총을 앞세워 독립을 외치는 자들의 외침을 철저히 짓밟아버리며 봉기를 분쇄해나갔고

트로타는 자신이 발표한 성명문 내용대로 헤레로족 민간인은 물론 아녀자와 아이들마저 보이는대로 학살하였고 항복을 외치는 자들마저 죽이기만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1904년 8월, 자무엘이 이끄는 오천명의 병사들이 바르터베르크 (현 나미비아 오하마카리) 에서 기관총과 대포로 중무장한 이천명의 독일군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지만 대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자무엘은 포로로 잡혀 나미비아 남서쪽에 위치한 악명높은 강제수용소 ‘상어섬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고

(이 상어섬 수용소에는 천 여명이 달하는 식민지 아이들이 강제수용되어 비인륜적인 중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하거나 불법 생체실험에 이용되었는데 이 실험을 주도한 자가 훗날 나치당의 주요인사가 되는 오이겐 피셔다)

구심점을 잃은 봉기군은 그렇게 와해되어 실낱같던 자주독립의 꿈은 그렇게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남아있던 헤레로족과 그들과 함께 독일에 맞선 민족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주인에게 대든 동물을 개도하려는 독일의 사후 처리 뿐이었다

봉기는 끝났지만 잔인하기 짝이 없는 독일군은 1904년부터 1907년까지 그들의 뿌리까지 짓밟으며 집단학살을 자행하였고

그 결과 약 8만 5천명이었던 헤레로족은 약 7만 여명이 학살당했으며, 나마족은 전체 부족민의 절반이 희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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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된 자무엘 마하레로의 시신의 장례식 행렬이 1923년 8월 26일 열렸다


한편 자무엘 마하레로는 그 ‘죄’를 물어 독일에 의해 추방되었지만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영국령 베추아나랜드(현 보츠와나)에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1923년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3일 그의 시신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오카한자로 반환되었고 이 날은 현재까지도 ‘헤레로의 날’이라 하여 나미비아의 헤레로족들의 명절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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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엘 마하레로와 그의 친부, 조부가 함께 묻혀있는 묘비


그는 나미비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홉명의 국가 영웅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나미비아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준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나미비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샘 누조마는 2002년 8월 26일, 3선 취임식 연설때 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독일 식민 당국과 독일내 백인 이주민들에 대한 저항을 기획했습니다.

그 결과 1904년 1월 봉기가 시작되었고, 마하레로 추장과 그의 전사들은 오마루루의 오카한자와 바르터베르크에서 그들과 맞섰습니다.

그들의 힘을 두려워한 독일 식민지 부대는 여성과 아이들마저 절멸한 악명 높은 폰 트로타의 휘하 부대들을 파견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의 혁명적 정신과 선구적인 기억에 우리는 겸허히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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