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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6)
동화 되거나 일본으로 이주 요새 가설로는 일본어계열 사용자들이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하드라
동화
하긴 날씨가 더럽게 추워졌을테니
본문에도 있듯이 기후뿐만 아니라 천년넘게 늪지대여서 요서는 사람이 안살던 버려진 땅이었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은 것도 요서 늪지대를 이용해서 요동 방어선을 만든거
요택지역은 또 생태환경이 열악하여 인가가 드물다. 모기떼가 하늘을 가리고 수해가 엄중하며 길이 질고 발이 빠져 통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북송(北宋)의 허항종(許亢宗)이 사신(使臣)으로 금나라에 다녀온 뒤 <봉사행정록>에 요택을 지날 때의 견문을 이렇게 써 놓았다. “가을과 여름철에 모기떼가 욱실거려 밤이나 낮이나 소와 말이 이곳을 지나지 못했다. 행인은 저마다 두껍게 옷을 입고 가슴과 배를 또 옷으로 둘러싸야 했다. 앉아서 숙대를 태워 연기를 피우니 좀 괜찮았다. 무(務, 양어무<梁魚務>를 가리킴, 위치는 현재 흑산현 강둔진 토성자<姜屯鎭土城子>)라는 마을은 (요택 변두리에 있는) 물가에 터를 잡았는데 수십 인가가 그 물을 둘러싸고 있었다.” 양어무는 요나라와 금나라시기 요택 서부지역에서 비교적 큰 마을에 속했다. 그래도 수십 집밖에 안 되니 요택 안의 인가는 더욱 드물고 허허벌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나라 만력 말기(萬歷末年)에 이르러 하요하평원은 “수해가 많아 역참(驛堡)과 돈대를 빼놓고는 인가가 아주 드물어 사방으로 바라보면 연기 나는 곳이라곤 없는데 오로지 갈대들이 바람에 서로 비비적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고 한다. 만력 38년(기원 1610년) 6월에 조선의 사신 황세우(黃世祐)가 북경으로 가는 길에 요택을 지났는데 그가 쓴 <조천록(朝天錄)>에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24일, “(삼차하를 지나니) 평원의 광야에 갈대가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다. 바라보니 바다와 같았다. 수백 리 안에 산이라곤 보이지 않고 주먹만 한 돌과 막대기 같은 나무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하늘을 가릴 듯한 모기떼들이 욱실거리며 달려들어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행역의 고생이 극한에 다다랐다”… 25일, “아침에 출발했는데 모기떼의 성화에 못 이겨 평양포(平洋鋪)에 피신하였다가 저녁에 모기들이 잠잘 때 떠나려고 고평(高平)에 머물게 되었다. 고평과 반산 사이에 수해가 그렇게 심하다고 들었다. 뜻밖의 모기떼들이 이렇게도 사람을 못살게 구니… 당나귀도 온몸에 피를 흘리며 놀라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다가 땅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
단군: 이 평신들아 좀만 존버하면 석유가 나온다고!!!
저 지역 4계가 분명한편.
조금 내륙으로 연변 지역 가면 더 뚜렷해 지는데 농사도 잘되고 산간지역도 있고 방목지도 있고 바다도 있음...
연나라놈들한테 털려서 요동뺏긴거...
꼴알못 조상님들이 스타킹을 포기했다는줄
사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그냥 중국이랑 유목민들한테 밀린거임. 만주에 여진족들 날뛸 때도 요동은 농경민족들이 잘만 살아갔음.
저동네가 고대에 똥땅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좋은 철과 소금이.나오는 전략적 요충지임
고구려 국력의 원천이었던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