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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노동.. | 18/02/19 20:59 | 추천 51 | 조회 10994

병신과 여고생.SSul +1214 [14]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86878

일터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욕듣는것과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쓰는 작성자는
퇴근 후 후방주의 게시물에 점이나 찍어가며 이런데라면 헉슬리의 멋진신세계라도 귀를 닫고 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또 아주 잠깐 언젠가는 쯔위와 국제결혼을 할 수 있을거란 내뇌망상을 하곤 한다.
문제는 오늘의 일이였다.
일상이 하도 스펙타클하다보니 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이야기하려고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굉장히 난감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 허풍쟁이 녀석은 오늘도 거짓부렁이람' 하고 깔깔대지만 정작 내 일상을 접한
사람들은 '야 사람이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연민 속 부러움 섞인 눈빛을 보내곤 한다.
그 일은 불과 삼십분전의 사건이다.
해외로 자주 출장을 다닌다는 길드원에게 '그럼 뭐 분쟁지역이나 그런데... 러시아제 소총이랑... 하얀가루...'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한참 역관광을 당하고 있는데, 난 왜 무슨 말을 해도 본전도 못건지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존나 이 빙신같은 새끼는 하루하루가 쓰레기짓이고"
나는 나에게 욕을 자주 하고, 그 쓰디쓴 팩트폭력을 당한 나를 위해 내 인생에게 술을 자주 사주는 편이다.
오늘도 단지 그러려고 했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한 여고생을 보기 전 까지는.
"저보고 그러신거에요?"
여고생은 실험용 쥐마냥 시뻘개진 눈으로 나를 향해 악마사냥꾼 타락빔을 쏴대는데, 뎀딜이 얼마나 센지
"아니요. 그쪽보고 한 말 아닙니다." 라고 해야될 걸 "...아닐걸요?" 라고 대답해버렸다.
이 또라이같은놈이 지금 무슨말을?!
나는 당황하면 단어가 섞여 입밖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여고생의 눈은 마치 안토러스 신화 풀파밍을 끝낸
분노전사 같았고, 나는 덜컥 겁이났다.
그래서 또 다시 말해버렸다.
"아 그게예 그러니까네 아닐걸요가 아니고예 내가 그쪽한테 빙신이라고 한게 아닐거라는 말을 제가 이상하게 아니 그게아니라
그러니까 그쪽은 빙신이 아니라고 말한겁니더. 제가요 어디가서 막 욕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예 진짜라예."
나는 모든것을 놓아버렸다. 문장의 전달은 어렵지만 그것이 한 사람을 납득시키도록 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같은 언어를 쓴다고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해명을 경찰서 가서 하는게 빠르겠다 싶어서 반쯤 포기하는데 문득 여고생의 바뀐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말을 내포하고 있는 눈이였지만, 그 중 단 하나는 빠르게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 왔다.
'내가 지금까지 모자란놈하고 대화하고 있었구나.'
여고생 A양은 한숨을 쉰 뒤 너도 사는게 힘든데 내가 괜한 자격지심을 가졌구나 하는 눈으로 날 지나쳐 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단 하나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응. 응. 아니다 괘안타. 나쁜건 아닌데 좀 모자란것 같더라 아뭐고 알았다 간다고'
멀어져가는 여고생 A양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인생에게 술한잔을 사주기 위해 12평 원룸건물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단 한번도 나에게 술을 사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인생에게 계속 술을 사주련다.
안치환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맴도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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