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서 사관이 대놓고 왕을 비판한 사례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자신의 권위 확인 차원에서 여러 번 선위 파동을 벌였고 그때마다 세자(광해군)와 중신들은 석고대죄를 하며 충성심을 보여야 했다. 이제 WWE인 줄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사관들이 '그냥 선위 받아들여 버리는 게 좋겠다!'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또 다른 사례로, 선조의 아들 순화군이 살인을 여러 번 저질러 수원이라는 큰 마을이 망할 지경이 되자 위리안치(귀양 중에서도 가장 엄한 사례)하려고 했는데 순화군은 문에 앉아서 버텼다. 감히 왕자의 몸에 손을 댈 수 없다 보니 선조에게 지시를 내려달라고 했는데 선조는 알았다고만 하고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사관이 백성을 위해 왕자를 죽여야 한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좀 삔또상하면 귀양가는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조선시대 왕 패악질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 선위wwe가 제일 족같은거같음
선위 받는순간 역적되는데 역적되기싫으면 몇날며칠 석고대죄하면서 왕 삐진거 풀어줘야함 ㅋㅋㅋㅋ
순화군 정원군 임해군은 임진왜란 때 죽는게 나았다
기독교나 유교나 이상적으론 좋아도 정책으로 삼으면 변질되는건 똑같나봄
군군신신부부자자 가르치면 뭐함 왕 아들이라고 살인 저질러도 왕이 못본척 하면 그냥 아무 처벌도 안받는건데
사신은 논한다. 삼가 주상(主上)을 살피건대 춘추가 아직 높지 않은데 질병이 계속되어 약이(藥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듣건대 작년 가을 전교에 '천하에 어찌 어미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 하면서 군신(群臣)들을 협박하여 급급하게 나이 어린 비(妃)를 맞아들였다...
재취(再娶)하지 않는 예(禮)로 말한다면, 1후(后) 3부인(夫人) 9빈(嬪) 27세부(世婦) 81어처(御妻)가 이미 등극하던 초기에 갖추어졌으니, 1후가 훙(薨)하였어도 궁(宮)을 대신 다스릴 사람이 있는데 재취하는 데 급급한 것은 어째서인가....
국가가 한번 패란된 후로 기세가 쇠약해져서 위망(危亡)의 조짐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흥(中興)에 대한 계책 가운데 급박한 것이 많은데도 먼저 백성에게 국모(國母)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질병의 발생이 아마도 여기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지금 이 천리의 나라는 바로 자기 한 사람의 물건인데도 병 때문에 일을 폐하니, 기미를 아는 군자라면 반드시 미리 근심하였을 것이다.
선조가 재혼하려 하자 나온 사신의 극딜
죶같은 로리콘새끼 니가 지금 정신팔려서 나라 죶망하는중이다 ㅋㅋ를 박아넣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