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실존했던 이무기 이야기
?2023년에 태백에서 길이 8m의 거대 구렁이가 발견됐다면서 퍼진 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한국에 사는 뱀 중 가장 거대한 종인 구렁이는 길이가 1.5~1.8m에 달하는데, 이론상 4~5m까지 성장하는 게 가능해서 간혹 거대 개체에 대한 목격담이 들려오곤 함. 참고로 위 사진의 개체의 경우 8m는 아마 착시 등으로 인한 착각이고, 실제 크기는 3~4m 정도일 거라고 하네.
?이런 거대 개체들의 영향인지, 한국에는 이무기라는 상상의 동물에 대한 전승이 존재한다. 용이 되기 직전의 동물인 이무기는 관련 설화가 아주 많지.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이무기는 물속에서 1000년을 수행하여 여의주를 획득하면 용이 될 수 있다고 함.
그런데 약 6000만 년 전, 당시 남아메리카 일대에선 이런 이무기가 진짜로 존재했는데... 이번 이야기는 옛날 옛적 실존했던 이무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이야기는 콜롬비아 북부에 위치한 세레혼 탄광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석탄을 채굴하는 노천 탄광으로, 굴을 파지 않고 이렇게 지표면 전체를 깎아내려가는 형식의 탄광임. 지층을 깎아가는 만큼 이런 탄광은 자연스럽게 화석 발견으로 이어지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화석도 이곳 세레혼 탄광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응? 처음 보는 화석이네. 뭔가 대박의 냄새가 나는걸...?"
2002년, 플로리다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조너선 블로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세레혼 탄광을 찾아온다. 그곳에서 다 같이 화석을 찾아내 발굴하는 작업에 임했고, 그 결과 약 6000만 년~5800만 년 사이의 지층에서 여러 생물들의 화석을 발굴해 냄. 발굴된 화석은 악어나 거북이의 것도 있었고, 식물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
?바로 뱀의 척추뼈와 갈비뼈. 처음에는 악어의 것으로 오인했지만, 추후 연구를 통해 이 뼈가 뱀의 것이라는 걸 알아낸다. 뼈의 형태가 현생 뱀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을 지녔기에 고대 뱀의 것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음. 특히 현생 뱀 중 보아의 것과 가장 유사해서, 수많은 뱀의 종류 중 보아과에 속하는 뱀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것보기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척추뼈가 왜 특이했냐면...
?엄청 거대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거가 이번 이야기 주인공의 척추뼈 화석인데, 왼쪽에 있는 건 아나콘다의 척추뼈임. 현생 가장 거대한 뱀 중 하나인 아나콘다와 비교해서 저 정도이니, 그 크기가 아주 거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제이슨 헤드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에 의해 티타노보아라는 이름을 받으며 신종으로 정식 공개된다.
이름의 뜻은 뭐 보다시피... 겁나 큰 보아뱀이라는 뜻이다. 티탄(titan)을 변형한 다음 보아랑 합친 거니까.
?(2층 버스와 사람, 그리고 티타노보아와의 크기 비교)
?(티타노보아와 현생 가장 긴 뱀인 그물무늬비단뱀, 그리고 사람과의 크기 비교)
?(인간의 상체와 티타노보아의 두개골 크기 비교)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티타노보아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2009년 신종 보고와 함께 추정된 크기는 몸길이 12.8m에 몸무게 1,135kg이었음. 그런데 추후 두개골 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좀 더 정확한 크기를 알아낼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재추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 몸길이가 무려 14.3m라는, 안 그래도 컸던 크기가 되려 버프를 받게 된다. 더 놀라온 건 저 14.3m가 평균 크기였음. 크기 추정에 사용된 표본들 외의 것들도 비슷한 크기를 지닌 개체였다는 것이 밝혀져서 이를 알아냈다. 이에 따라 최대 성장 한도는 저것보다 더 컸으리라 추정됨. 현생 가장 거대한 뱀 중 하나인 그린아나콘다가 보통 4~5m 정도로 자라는데, 최대 성장 한도는 6.7m라서 간혹가다 6m가 넘는 개체들도 발견되니까.
?(티티노보아 실물대 모형을 손보는 작업자. 티타노보아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크기가 이리 크니 티타노보아는 몸 굵기도 장난 아니었다. 몸통 가장 굵은 부분의 높이가 무려 1m에 달했음. 참고로 '둘레'가 아니라 '높이'가 1m다. 즉 몸을 지면에 딱 붙이고 가도 몸통의 높이가 사람 골반만큼 온다는 소리임.
?크기가 이러니 과거엔 당시 남아메리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으리라 여겼다. 현생 보아과 뱀들이 그렇듯 먹잇감을 감싼 다음, 강한 힘으로 조여 질식시키고 잡아먹었으리라 추측했지. 그래서 과거 복원도 들을 보면 위 그림처럼 악어를 사냥하는 모습으로 그린 게 많다. 현생 아나콘다가 카이만 악어를 위 그림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냥하는 거에 착안한 건데...
?아쉽게도 현실은 달랐다. 2013년에 티타노보아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 티타노보아는 물속 생활을 주로 한 어식성 포식자였다는 것이 밝혀졌음. 크기가 너무 크다 보니 육상에서 활동하기엔 제약이 많이 따랐고, 이에 따라 물속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으리라 추정된다. 입과 이빨의 구조가 현생 어식성 뱀들의 것과 매우 유사해서 이를 알 수 있음. 물론 크기가 압도적인 만큼 동시기에 공존했던 거북이나 악어들도, 먹을 수 있는 크기라면 기회가 될 때 적극적으로 잡아먹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선 겨우 물고기나 잡아먹었다고 얕볼 수 있는데... 이게 또 마냥 그렇지는 않다. 티타노보아가 살던 시기의 남아메리카엔 거대 생물들이 가득했거든. 티타노보아가 발견된 지층에서 같이 나온 고대 폐어의 크기가 2.1m인 걸 감안하면... 사람도 잡아먹고 남을 물고기들을 주식으로 삼았던 거임.
?"아니 미친 진짜 이무기라 불러도 손색없는 크기네;;, 근데 왜 이렇게 커진 거임? 이렇게 커져서 얻는 이득이라도 있나?"
?티타노보아가 이렇게 거대해질 수 있었던 건 2가지 이유 덕분이다. 바로 기후가 파충류들이 거대화하기에 적합했고,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다는 점 때문임.
?일단 티타노보아가 살던 시기의 지구는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더 높았다. 위 그래프를 보면 온도가 점점 높아지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솟아오른 기간이 있지? 저 때가 바로 현재 과학자들이 면밀히 살펴보는 시기,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다. 약 5600만 년 즈음에 시작돼 약 20만 년 동안 이어진 이 사건은, 원인 불명의 이유로 갑자기 엄청난 지구온난화가 발생했음. 그래서 과학자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도움이 되게끔, 이 사건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명칭은 영어명 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를 줄인 PETM으로 축약해서 불리는 편.
아무튼 안 그래도 티타노보아가 살던 시기의 지구는 지금보다 더 따뜻했는데, 열대 지역의 온도가 현재와 비교해서 약 3~6도 더 높았다. 그런데 이 극열기가 벌어지자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무려 5~8도나 증가함. 이 엄청난 지구온난화로 인해 당시 지구엔 추운 극지방이란 개념이 없었다. 남극조차도 이 당시엔 연평균 기온이 16도, 겨울철 평균 기온은 11도여서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음. 그래서 여러 종의 포유류들이 남극을 뛰놀며 살아가고 있었다.
참고로 위 그래프는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로 인한 심해 수온 변화를 나타난 것으로, 보다시피 극열기 당시엔 심해 수온이 무려 13도까지 치솟았던 걸 볼 수 있다. 낮은 거 아닌가 싶을 텐데, 현시대의 심해 평균 수온은 약 4도임. 그래서 심해 수온이 저 정도인 건 진짜 엄청나게 높은 거다. 심해가 저 정도니 수면과 가까운 표층 온도는 더 심했지. 원래도 더운 곳이었던 열대 바다의 경우, 당시 표층 온도가 무려 37도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티타노보아의 서식지 풍경화)
이렇게 따뜻하니 당시 지구 전역은 대부분 열대우림으로 구성되었다. 티타노보아가 살던 시기의 남아메리카 역시 습한 열대림과 큰 강으로 덮인 생태계를 구성했음. 파충류는 변온동물인 만큼 따뜻한 기후일수록 생존에 더 유리해서, 그만큼 몸집을 키우는데도 더 유리하다. 그 결과 티타노보아와 공존했던 파충류 중에는 거대종들이 많았음. 몸길이 6m의 민물악어라든가... 등딱지 길이만 1.7m에 달하는 민물거북이라든가... 그야말로 대 파충류 시대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티타노보아가 거대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히 더워서 거대해진 거라면, 현시대에 열대 지방에서 사는 파충류들도 거대해야 하니까. 그런데 몇몇 예외를 빼면 대부분 크기가 작은 편이다. 그리고 여기서 2번째 이유인 마땅한 경쟁자의 부재가 빛을 발하는데...
?글을 잘 읽어줬다면 티티노보아가 약 600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는 걸 기억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시기는 600만 년 전, 운석 충돌로 인해 벌어진 백악기 대멸종과 가까운 시기임. 이에 따라 당시 생태계엔 공백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남아메리카에 살던 파충류들이 거대화를 할 수 있었음. 환경도 좋은데 마땅한 경쟁자도 없다? 이건 참을 수 없지 바로 거대화 드가자를 한 것.
?그러나 전성기란 건 언제나 끝이 있는 법.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로 달궈진 지구는 갑자기 급속도로 기온이 내려가더니만 그대로 빙하기가 찾아온다.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인데, 아무튼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빙하기는 거대 파충류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음. 그 결과 180도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티타노보아를 필두로 한 거대 파충류들은 그대로 멸종하고 만다.
?(영상 부제목: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
다만 티타노보아가 속한 보아과 뱀들이 완전히 멸종한 건 아니라서, 현재는 현생 가장 큰 뱀 중 하나인 그린아나콘다가 티타노보아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다시피 그린아나콘다도 정말 어마 무시하게 큰데(다만 영상 속 개체는 식사를 한지 얼마 안 돼서 더 커 보이는 느낌은 있다), 티타노보아는 실제로 마주했다면 어땠을지 가늠조차 안되네.
?이리 해서 과거에 실존했던 이무기,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뱀 티타노보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다.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면 남아메리카는 아마 영화 아나콘다를 현실에서 보게 됐을 것 같음. 물론 현생 그린아나콘다가 그러하듯 티타노보아도 자기 덩치 때문에, 막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엄청 잽싸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참고로 최근에 개봉한 영화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에서 티타노보아가 처음으로 실사 영화에 출연했다. 다만 영화가 고생물들 고증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만들어서... 티타노보아도 생긴 게 영 엉망임. 대충 만들었는지 머리 -> 목 -> 몸통으로 나누지 않고 통짜 원통 몸매로 구성한 건 둘째치고, 피부를 비늘이 없는 축축한 느낌에 창백한 하얀색으로 구성했더라고. 개인적으로 좀 짜치긴 하지만 영화니까 뭐 그러려니 한다.
그럼 이상으로 글을 마치고, 언젠가 또 소재가 생각나서 글을 쓰게 되면 다시금 올려보겠다. 읽어준 사람들 모두 고마워.
https://playduo.kr/index.html?detail=8fb7240f-0b8f-4c45-900c-b92b0241e7f6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나온 친구 외에도 신기한 고생물들에 대해 더 관심이 간다면 위 이상형 월드컵을 추천한다. 일반인에게도 신기하다고 여겨질 법한 고생물들 128마리를 모아서 열심히 만들었어.























난 저거 첫짤 색감때문에 에이 합성이네 하고 무시했던 사진인데..
실제가 맞고
구렁이가 3~4미터라고...?
암컷 개체가 번식을 하지 않아서 거기에 들어갈 에너지를 성장에 쓰면 평균보다 월등히 큰 개체들이 나오기도 한다더라.
뭐 설화같은데서 언급이 안나올수가 없겠네..
1.5미터정도 되는놈 실물로 보곤 기겁했는데..
4M 면 굵기도 엄청나겠지..